의약 용도발명 판례 동향

I. 서론: 의약 용도발명의 법적 특수성과 판례의 역할

의약 용도발명은 특정 물질의 새로운 의약적 용도를 발견하는 것에 기반한 발명으로, 제약 산업 혁신의 핵심 동력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제1 의약 용도발명은 특정 물질의 최초 의약 용도를 발견한 것이며, 둘째, 제2 의약 용도발명은 이미 알려진 약물의 새로운 치료 효과(예: 다른 질병 치료)를 발견한 것으로, 대부분의 특허 분쟁은 이 영역에서 발생한다.

대한민국 특허법은 ‘발견’이 아닌 ‘창작’을 보호 대상으로 하므로, 물질의 속성을 단순히 발견하는 것은 특허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의약 용도발명은 ‘발견’을 ‘발명’으로 인정하는 독특한 법적 지위를 가진다. 이는 인간에 대한 수술, 치료 등 ‘의료행위’를 특허 대상에서 제외하는 원칙을 우회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즉, ‘특정 질병 치료 방법’으로 보면 의료행위에 해당하므로, 우리 법원은 이를 ‘특정 용도를 내재적 속성으로 갖는 물의 발명(product invention)’으로 취급하는 논리를 채택했다. 이러한 논리는 의약 혁신을 보호하는 장치인 동시에, 법원이 특허 요건을 다른 분야보다 엄격하게 심사하는 근거가 된다.

의약품은 국민 보건과 직결되므로, 특허권자의 사적 이익과 공중의 의약품 접근성이라는 공익 간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대법원 판례는 이러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한편으로는 진정한 혁신을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실 특허나 특허권의 부당한 연장(evergreening)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II. 핵심 특허 요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

1. 명세서 기재 요건: 엄격한 완성도의 요구

대법원은 의약 용도발명의 명세서에 출원 시점에 약리 효과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실험 데이터(동물실험, 시험관 시험 등)가 기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이는 발명이 단순한 추측이 아닌 완성된 기술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며, 출원 이후에 데이터를 보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특허청구범위는 ‘약리기전’이 아닌 구체적인 ‘약효'(치료 대상 질병명)로 명확히 특정해야 한다. 다만, 약리기전만으로 기재되었더라도 통상의 기술자가 그로부터 명확한 약효를 파악할 수 있다면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 (대법원 2001후65 판결).

2. 진보성 판단: 예측 가능성을 둘러싼 법리의 진화

진보성은 의약 용도발명 소송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대법원은 일련의 중요 판결을 통해 그 기준을 구체화했다.

프레가발린 사건 (대법원 2013후2873 판결): 이 판결은 진보성 판단 시 선행문헌의 전체적·종합적 평가 원칙을 확립했다. 법원은 선행문헌의 일부 내용만을 근거로 진보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되며, 문헌 전체의 내용과 심지어 그와 배치되는 다른 문헌의 내용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통상의 기술자가 발명을 쉽게 도출할 수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사후적 고찰(hindsight bias)에 기반한 손쉬운 진보성 부정을 경계하고 특허권자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한 판결로 평가된다.

이매티닙 사건 (대법원 2016후502 판결): 이 판결은 진보성 판단의 무게추를 옮긴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특허법원은 항암제 개발의 막대한 비용과 낮은 성공률을 고려하여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success)’라는 높은 기준을 제시하며 특허의 진보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파기하고, 선행기술로부터 치료 효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면 임상적 성공이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진보성이 부정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제약 분야의 특수성보다는 기술 중립적인 통일된 법리를 우선한 것으로, 예측 가능성이 높은 기술의 특허 획득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III. 발명 유형별 랜드마크 판결 분석

1. 투여용법·용량 발명 (대법원 2014후768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은 대한민국 제약 특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다. 이전까지 대법원은 투여용법·용량을 의사의 의료행위 영역으로 보아 특허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판례를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투여용법·용량이 예측 불가능한 현저한 효과(예: 부작용 감소, 효능 증대)를 가져온다면, 이는 의약품이라는 ‘물’의 새로운 내재적 속성이자 기술적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투여용법·용량 발명의 특허 가능성이 전면적으로 인정되었으며, 이는 오리지널 제약사의 제품 수명주기관리(Life Cycle Management, LCM) 전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 선택발명 (대법원 2019후10609 판결, 아픽사반 사건)

선택발명은 넓은 상위개념 화합물 군에서 특정 하위 화합물을 선택한 발명이다. 아픽사반 판결 이전 법원은 선택발명의 진보성을 판단할 때 거의 전적으로 ‘효과의 현저성’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선택발명 역시 일반 발명과 마찬가지로 ‘구성의 곤란성'(방대한 화합물 군에서 특정 화합물을 선택하는 것의 어려움)과 ‘효과의 현저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며 기존 법리를 변경했다. 이는 효과가 다소 개선된 정도에 그치더라도, 구성의 선택 자체가 비자명했다는 점을 입증하면 진보성을 인정받을 길을 열어준 합리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IV. 결론: 전략적 시사점 및 향후 전망

지난 20여 년간 대법원 판례는 의약 용도발명에 대해 엄격하면서도 역동적인 법리 체계를 구축해왔다. 명세서 기재 요건을 강화하여 발명의 완결성을 요구하는 한편, 진보성 판단에서는 사후적 고찰을 경계(프레가발린)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기술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이매티닙)을 적용하는 등 균형을 추구해왔다. 또한 투여용법·용량 및 선택발명의 특허성을 인정하며 국제적 기준과 조화를 이루고 산업계의 R&D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이러한 판례 동향은 제약사에 다음과 같은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오리지널 제약사: 투여용법·용량 개선 등을 통한 LCM 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R&D 초기부터 ‘예측 불가능성’과 ‘구성의 곤란성’을 입증할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제네릭 제약사: 이매티닙 판결 등을 근거로 선행기술로부터의 ‘예측 가능성’을 주장하거나, 명세서 기재 요건 미비를 공격하는 등 특허 무효 전략을 정교하게 수립할 수 있다.

향후 의약 용도발명 법리는 ▲투여용법·용량 특허와 관련된 의사 면책 조항의 입법화 문제 ▲AI 기반 신약 개발 및 개인 맞춤형 의약품 등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새로운 법적 쟁점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법원은 앞으로도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과 공정한 시장 경쟁 촉진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